[사설] 한덕수 후보, 말보다 인식이 문제다 -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그런데 ‘광주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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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한덕수 후보, 말보다 인식이 문제다 -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 그런데 ‘광주사태’?
  • 편집부 기자
  • 등록 2025-05-05 23:2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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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호남 출신’을 강조하고 있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5·18민주화운동을 “광주 사태”라고 지칭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그가 국립 5·18민주묘지 참배를 시도했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무산된 다음 날, “저도 호남 사람입니다”라고 수차례 강조하며 해명에 나섰지만, 같은 자리에서 두 차례나 “광주 사태”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표현은 더 이상 단순한 언어 습관이나 말실수로 치부할 수 없다.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기 어렵거나 사용하기가 어려웠다면 그냥 5·18이라고 했어야 했다.

‘광주 사태’라는 표현은 전두환 군사정권이 5·18을 단순한 소요로 규정하며 악의적으로 사용했던 용어다. 이후 진상 규명과 법적 절차를 거쳐, 5·18은 명백한 민주화운동으로 헌법재판소, 국회, 정부가 공적으로 인정한 사건이다. 1997년부터는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었고, 이를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표현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자, 희생자에 대한 모욕이다. 더욱이 '사태'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물리적 충돌이나 국가적 혼란을 표현할 때 권력자의 시각에서 사용되어 온 만큼, 민주주의의 피로 쟁취된 항쟁에 붙일 표현이 아니다.

이런 표현을 2025년에도 무심코 입에 올리는 정치인이 대통령직에 도전하고 있다는 현실이 실로 충격적이다. 게다가 한 전 총리는 전두환 정권 당시 고위 공무원으로 출세했고, 이후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자 전북 출신임을 내세우기 시작했다는 의혹도 정치권에서는 이미 오래된 일화로 회자되고 있다. 이러한 해프닝은 유권자 앞에서 자기 정체성을 유리하게 포장하려는 정치적 기회주의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런 전력 위에 “저도 호남 사람”이라는 정치적 호소가 쌓이니, 당연히 진정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5·18 유족회·부상자회·공로자회와 5·18기념재단 등은 그의 발언을 “중대한 역사 왜곡”으로 규정하고 공개 사과와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자신이 겪었다던 군 복무 시절의 아픔을 말하는 과정에서도 다시금 ‘광주 사태’라는 용어를 반복했다. 이는 실수라기보다는 사고의 패턴, 즉 내면화된 역사 인식이 반영된 언어라 보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정치인은 언어로 책임진다. 특히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라면, 헌정 질서를 짓밟았던 과거의 국가 폭력과 민주 시민의 저항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하고, 그 표현에 한 치의 무례도 없어야 한다. 용어 하나에 그 사람의 역사 인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광주 사태”라는 표현은 결코 사소한 말실수가 아니라, 한덕수 후보의 시대 인식이 1980년에 멈춰 있다는 강력한 증표일 수 있다. 지난해 말 윤석열 정부에서 벌어진 비상계엄 상황에서 한덕수 대통령 후보는 당시 국무총리로서 비상계엄에 반대하지 않았고 오히려 방조하거나 협조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그가 진정으로 호남의 지지를 원한다면, 고향 출신이라는 말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5·18 정신을 왜곡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약속, 그리고 그 정신을 제대로 이해하고 계승할 수 있다는 정치 철학의 증명이다. 사과도 없이 “저도 호남 사람”이라며 표를 구하려는 태도는, 오히려 그 뿌리 깊은 상처를 다시 후벼 팔 뿐이다.

국민은 뿌리가 아니라, 태도와 철학을 본다. 지금 한덕수 후보에게 요구되는 건 해명이 아니라 성찰이다. 그의 표현이 실언인지, 아니면 본심인지에 대한 판단은 결국 국민의 몫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2025년에 ‘광주 사태’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에는,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미 너무 많은 희생을 치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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